원식은 그의 음악만큼이나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매일 아침, 작업실로 가도 되겠냐는 문자가 재환을 깨웠고 재환이 잠들고 난 이후엔 다른 버전으로 편곡된 음악이 메일로 도착했다. 피곤한 기색 하나 없는 얼굴로 재환의 작업실 한 구석을 차지하고 앉은 원식은 재환의 손 끝에서 탄생하는 극적인 장면 장면에 웃고 울었다. 그런 원식을 보며 재환도 웃고 울었다. 소소한 일에도 쉽게 터지는 웃음과 울음에 재환은 어색함과 동시에 그리움을 느꼈다. 이렇게 웃고 운 적이 언제였던가. 매일 아침 고요히 인사를 건네고 집을 나섰다가 고요히 집으로 들어서 침대에 눕는 택운을 떠올렸다. 그 옆에 함께 고요히 멈추어 있는 자신을 떠올렸다. 그리고 역동적으로 제 감정을 가감없이 내뱉는 원식을 바라보았다. 원식은 자꾸만 자신과 함께 하기를 권유하며 손을 내밀었다.
원식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는 꽤나 호평을 받았다. 따라서 그와 함께하는 일은 그 기간을 점차 늘려갔다. 원식의 감정은 마른 땅으로 빗물이 스미듯 재환에게로 옮겨졌다. 원식은 매번 원식을 따라 웃는 재환의 입가를 쓸고 원식을 따라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었다. 원식보다도 먼저 눈물을 흘렸던 날, 뺨을 따라 내려오던 손가락은 입술에 멈추었다. 가만히 맞추어지던 시선이 흔들리고 뜨러움을 간직한 두 입술이 마주닿았다. 동요없이 가라앉았던 감정의 호수에 원식이 파동을 일으켰다.
"형, 재환아."
원식이 낮은 음으로 연주하는 이름은 항상 달콤했다. 불안과 설렘이 섞인 눈으로 바라보아도 단단한 원식의 눈을 따스함만을 전해주곤 했다.
"나랑 살까?"
셔츠자락을 파고들어 허리를 쓸고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원식이 물었다. 조용히 입술을 감춰무는 재환을 보며 조금은 씁쓸하게 웃었다.
"나 사랑하잖아."
"응."
"그사람은...? 사랑해...?"
원식의 물음에 재환은 입을 다물었다. 사랑하냐고 물으면 사랑한다는 답밖에 할 수 없었다. 재환의 모든 처음이 택운이었고 택운은 재환 그 자체였다. 두 손을 맞잡고 차가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가 저만 원식이란 온기를 잡고 빠져나올 수는 없었다. 원식을 사랑하는 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재환은 택운을 사랑했다. 습관적으로 물어버리는 아랫입술을 가만 내려다보던 원식은 손을 뻗어 입술을 메만졌다.
"아니야, 미안해. 입술 깨물지마. 상하잖아."
좁은 턱을 감싸쥐는 뜨거운 손을 겹쳐잡으며 뺨을 부비니 곧 입술이 맞물려왔다. 고개를 꺾어 혀를 받아들이며 눈을 감는데 굳게 닫혀있던 작업실 문이 열렸다.
"..."
한 손에 초밥을 쥔 택운이 서 있었다. 후다닥 떨어진 두 사람을 바라보는 택운의 눈은 여전히 동요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밀어내는 재환의 팔을 붙잡고 선 원식이 눈을 날카롭게 늘이며 택운을 바라보았다. 혹여 주먹이라도 휘두르면 함께 응해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택운은 고요한 표정만큼이나 고요한 발걸음으로 작업실에 들어섰다.
"이번에 출근하는 회사가 이 근처라. 저녁이나 같이 할까해서 와봤는데 식사 같이 할 사람이 있었네. 너 좋아하는 초밥 사왔으니까 먹으면서 해. 나한테 식사 거르지 말라고 잔소리는 다 하면서 매번 넌 거르더라."
"형..."
"2인분이니까 나눠먹고. 난 그냥 나가서 먹을게."
주머니에 꽂아 넣은 손을 꺼내지도 않고 택운이 돌아섰다. 눈가가 붉어져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건 택운이 아닌 재환이었다.
"형, 화 안 내?"
문고리를 돌리는 택운의 손을 잡았다. 동그란 눈을 잔뜩 일그리고 귀여운 눈썹을 축 늘여뜨린 게 귀여워 택운은 원식의 타액이 남아 번들거리는 입가를 쓸었다.
"내가 왜 화를 내. 날 떠날거야?"
"....아니..."
"그것 봐. 내 곁에 있을거잖아. 결국엔 내 옆으로 와서 잠이 들고, 매일 아침 내 곁에서 눈을 뜰 꺼잖아."
입술을 내렸다. 평소라면 그저 바라만 보았을 입술이 어쩐지 더 탐스러워보여 실로 오랜만에 재환을 맛 보았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먼 과거, 그의 처음을 떠올리게 해 뺨을 톡톡 두들겼다.
"이따 집에서 보자."
택운이 완전히 문을 나서고 재환은 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화를 내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마음 반과 화를 내주었으면 하는 마음 반. 오히려 화가 나 눈을 번뜩이는 건 원식이었다. 입맞춤으로 인해 부어버린 입술을 또다시 꾹꾹 눌러버리는 재환을 바라보던 원식이 탁자에 반쯤 기대어져 있던 몸을 거칠게 일으켜 세웠다.
"밤마다 돌아갈거야? 사랑하니까? 나랑 하는 건 사랑이 맞아?"
"사랑해. 맞아, 너도 형도, 사랑이 맞아."
"이재환 너 진짜,"
"그래서 떠날거야?"
숙였던 고개를 들고 재환이 원식을 바라보았다. 참아도 참아지지 않는 지 터져버린 눈물이 동그란 뺨을 따라 좁은 턱으로 떨어졌다. 원식이 좋아하는 브라운 빛깔의 눈동자가 물을 먹어 반들거렸다. 힘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꽉 움켜쥐었던 주먹을 풀었다. 화가 나 박박 갈던 이에 힘을 풀고 재환의 앞에 마주섰다.
"....아니. 내가 어떻게 떠나."
뺨을 그러쥐었다. 입술 사이를 거칠게 파고들었다.
사랑한다. 냉정의 심연에 가라앉아 버린 택운을 놓지 못하고 원식을 향해 손을 뻗는 재환을 사랑한다. 그가 가라앉지 않도록 파동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원식은 만족한다. 제가 보낸 물결에 재환이 흔들리는 것을 사랑한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st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