녘 대학을 서울로 가고싶어해서 혼자 원룸촌으류 상경함. 매일 아침 일찍 학교갔다가 야자까지 하구 집애 돌아오는데 앞집은 맨날 문 잠겨잇고 그래서 빈 집이라고 생각했음. 그런데 어느 날은 아침에 나가는데 앞집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나옴
-어? 앞 집에 학생이 이사왔다고 하던데 처음 보네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에 녘 그냥 고개만 끄덕이며 인사를 함. 그리고 앞집 남자는 뭐가 그리 신이나는데 주절주절 이야기를 꺼냄. 이름이 이졔환이구 이제 26살이구 사정이 있어 혼자 살고
그닥 관심 없는 이야기에 고개만 주억거려줌. 일층에서 엘베 문이 열리자마자 급한 얼굴로 발을 동동대고 있던 남자에게 이끌리듯 쟌이 나가버리고 녘은 징징 울리는 귀를 한전 후볐음. 진짜 말 많다...
그런대 그 뒤로 우연인지 졔환이 만들어낸 필연인지 집을 나설때마다 졔환을 마주침. 그때마다 바보처럼 입을 크개 벌려 웃으며 졔환은 녘에게 인사를 건넸음. -녀가! 좋은 아침! 오늘 지인짜 춥다아. 교복만 입으면 안추워? 위에 패딩같은거두 걸치지
-공부하느라 힘들겠다. 난 학교다닐때 공부 안했거든. 맨날 교과서에 낙서만 했어. 녘이는 공부 잘해? -아침은 먹구 가는거야? 요 앞에서 삼각김밥이라두 사줄까? -야자하구 이제 와? 히잌 진짜 늦게 끝나네에?? 요새는 학생들도 엄청 피곤하구나ㅠㄴㅠ
이렇다 할 반응이 없어도 녘 옆에 선 졔환은 조잘조잘 혼자서 떠들었음. 걸음이 빠른 녘을 따르기 위해 종종걸음을 치면서 숨을 헐떡거려도 말이나 발걸음을 멈추지는 않았음. -형 저한테 왜그래요? -웅? 우아! 오늘 녘이가 말해줬다!! 와 진짜 기분조아!
-하..말을 말자 한숨을 쉰 녘이 돌아서고 춥다고 조잘거린 주제에 후드만 입고 나왔던 졔환은 서서 팔을 붕붕 흔들었음.오늘도 힘내! 화이팅! 귀를 울리는 소리에 짜증스럽게 이어폰을 귀에 쳐 넣었음. 진짜 나이먹고 할 일도 없나 아침저녁으로 사람 귀찮게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졔환은 기침을 쿨럭이면서 나왔음. 반쯤 쉰 소리로도 조잘거리기에 녘은 인상을 찌푸렸음. -말 좀 그만해요. 목소리 진짜 듣기 싫어 -아...미안. 기침이 너무 나와가지구... -그리고 진짜 나한태 왜그래요? 배웅이나 마중 나와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잖아. 귀찮으니까 좀 가요
-그야...나는 녘이가 좋으니까... -내가 좋아요? 형 게이에요? -어? 아아니...녘이는 건강하구... 키도 크고 잘생겼구... -됐어요, 듣기 싫어. 갈꺼니까 더 이상 따라오지마요
혼난 강아지처럼 축 늘어지는 어깨나 눈꼬리를 애써 무시하며 돌아선 녘은 부러 발소리를 쿵쾅대며 뛰었음. 미안 이라거 작게나마 목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지만 돌아서자마자부터 이어폰으로 귀를 막은터라 저 혼자 착각한 건지 진짜 졔환이 그리 말한 건지 알 수 없었음.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졔환이 안보임. 처음 이사왔을때쯔음처럼 굳게 닫힌 졔환의 집 문을 열릴 생각도 하지않앗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층수를 세어가며 바라본 졔환의 집은 온통 깜깜하게 잠식되어있었음
-뭐야. 이렇게 쉽개 떨어져 나갈 거 그동안 피곤하게 달고다녔네.
투덜대며 발 밑에 놓인 돌을 찼음. 녘의 일상은 매일 똑같이 반복됨. 아침저녁으로 삐죽 얼굴을 들이대던 졔환이 사라진 것 외에는 너무나도 똑같은 하루였음. 그날 미안이라 사과하던 목소리가 정말 졔환의 목소리였나 감기걸려서 괜찮냐고나 물어보고 뭐라할걸. 아니 뭐라하지 말걸. 솔직히 혼자 살면서 나한테 그렇게 친근하게 말 걸어주고 식사햇냐 물어봐 줄 사람이 어디잇다구. 이웃이니까 친하게 지내자고 그런 걸 텐데 내가 너무 못되게 굴었나. 하는 후회가 들었음. 그래도 여전히 앞집문은 굳게 닫혀서 제환의 목소리 한 톨 들려주지않았음.
토요일 오전, 친구들과 도서관에 가기로 한 녘이 오전 느즈막히 집을 나섰음. 그리고 앞집 문이 빼꼼 열린 것을 발견함. -!? 형...? 졔환이형? 마지막날 거하게 면박을 줬던 것 때문에 당당히 큰소리로 부르지도 못하고 녘에 문틈으로 얼굴만 조금 들이밀었음. 그리거 현관에 잔뜩 쌓인 가방을 봄. 뭐지...?이사가나? 하는데 현관으로 한 남자가 나왔음. 처음 졔환을 봤던 날 그를 잡아 끌던 남자였음
병원에서 병실을 찾아 물어물어 가면서 녘은 끊임없이 투덜거렸음. 아니 온다고 첨부터 말했어야지 대뜸 입원했다고 전화하면 어떡해. 나 놀랬잖아. 전화 너머 아버지는 그냥 웃기만 했음. 그런데 엘베를 누르거 기다리는 녘 눈에 익숙한 뒷모습이 걸렸음. 거울처럼 반사하는 문에 비친 뒷통수에 녘은 고개를 휙 돌렸음. 처음봤던 녘의 시선을 잡았던 그 뒷모습은 사라졌지만 후다닥 따라가는 또 다른 뒷모습은 빈이 분명했음. 녘은 이름을 부르는 아버지께 대답도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어내며 그 뒤를 쫒았음.
-형 우리 못 봤어. 안 쫒아와. 그리고 좀 보면 어때 안그래? 형 뛰면 안된다니까 왜 말을 안들어
막다른 벽 앞에 선 빈이 보였음. 그리고 그 앞에 몸을 웅크린 ㅈㅖ환은 환자복을 입고 있었음. 일어나질 못하는 건지 한참을 심장을 쥐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졔환때문에 결국 빈은 무릎을 꿇고 앉았음. -안되겠다 형 엎혀 올라가서 마스크 좀 끼고 있자
-졔환이형...? 졔환의 팔을 끌려던 빈이 손이 멈추었음. 귀신이라도 본 양 잔뜩 놀란 졔환의 눈이 빈의 어깨너머로 녘에게 꽃혀들었음. 푹 꺼져버린 뺨과 갈라져 핏빛을 들어낸 입술. 빈에게 잡힌 깡마른 손목. 녘은 이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음.
멈추어버린 것 같았던 시간은 졔환이 기침을 토해내면서 급박하게 흘렀음. 입을 틀어막고 죽을 듯이 쏟아내는 기침에 빈이 얼굴을 하얗게 덧칠하며 졔환을 안아들었음. 어깨를 스쳐가는 빈의 옷자락을 꾹 쥔 마른 손가락과 입술을 틀어막은 손 사이로 옅게 비치던 피... 피? 잘못본거겠지. 녘은 멍한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빈과 졔환이 사라진 막다른 벽만 노려보았음. 터덜터덜 아버지의 병실을 들린 녘은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나서서 인포로 향했음. -여기 이졔환 환자 병실은 어디인가요? -이졔환 환자요?그 환자 조금 전에 발작을 일으키는 바람에 지금 면회가 어려우실거에요. 705호인데 지금은 가셔도 못 뵐테니 내일 다시 오세요 -아... 감사합니다 705 705 입으로 되뇌이며 돌아섰음. 그냥 빈이라도 봐야겟다는 생각에 무작정 엘베에 몸을 싣고 705호로 감. 705호는 1인실이 주루룩 늘어선 곳에 있었음. 아침을 안먹엇다는 녘을 편의점으로 끌고가 먹고싶은거 다 골라! 형 돈 많아! 하던 졔환이 떠올랐음. 그리고 닫린 병실 문앞에거 멈추었음.굳게 닫혀있는게 꼭 졔환의 집 문 같아 녘은 열 수 가 없었음. 항상 그랬듯이 형이 문을 열고 나왔으면 좋겠는데. 녘아 좋은 아침이야 하면서. 그 작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달고서는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은 아이처럼 마냥 해맑게. 그 순간 문이 열렸음. 녘은 눈을 들었지만 앞에 서 있는건 졔환이 아닌 빈이었음.
-아.. 사녘학생. 아까 경황이없어서 말도 못 했는데... 어떻게 알고 왔어요? -그냥 우연히 왔다가.. 익숙한 사람이 지나가길래... -아... 못 본걸로 해요. 형이 안좋아할거야. 아까 도망가는 것도 봣겠네요 그럼? 형 그렇게 필사적이에요. 그러니까 모른 척 해. 빈의 말에 녘은 눈만 굴렸음. 생기라곤 하나도 없이 메말라버린 졔환의 모습이 눈에 박혀 발걸음이 돌아서지지가 않았음. -그...저...졔환이형은... 손만 꼼질대니 빈이 녘의 손을 잡아끌었음. -형은 자니까 저쪽 가서 얘기해요
졔환은 어릴때부터 천식이 있었음. 한살 터울로 태어난 빈은 농구도 축구도 하며 뛰어다녔지만 졔환은 조금만 뛰면 심장께를 쥐고 주저앉곤 했음. 약한 기관지 덕에 감기는 빼놓지 않고 찾아오는 손님이었고 그 감기는 매번 폐렴으로 번졌음. 그리고 습관처럼 졔환을 괴롭히던 폐렴이 폐암으로 제 모습을 바꾸어버린 건 따지고보면 놀랄 일도 아니었음. 이리저리 망가져버린 폐는 거대한 암덩이에 쉽게도 잡아먹혔고 수술조차 불가능한 상태에서 졔환은 스스로 제 목숨을 놓아버렸음. 형이 기침을 할라치면 고사리 손은 턱에 받치고 기침이 가라앉도록 등을 쓸어내리던 빈은 그런 졔환이 너무 미웠음. 내가 이리도 처절하게 형 목숨을 구걸하는데 왜 형은 그리 쉽게도 놓아버리느냐고 울부짖었음. 그런 빈때문에 졔환은 의미없는 항암치료라도 받았고 그러기 위해 홀로 병원과 가까운 원룸촌으로 나와살았던 거였음. 그리고 빈이 미안할 정도로 의지없이 병원을 오가며 힘든 치료를 받던 졔환은 녘의 등장과 함께 조금씩 웃기 시작했음. 앞집에 새로 이사 온 고등학생이 정말 잘생겼다는 둥, 저번에 계단으로 집까지 오르는데 엘베를 탄 자신과 비슷하게 도착했고 심지어 숨 하나 흐트러지지않앗다라는 둥 병원에 가기 위해 빈이 졔환을 찾을 때마다 졔환은 제 무용담인양 녘의 이야기를 꺼냈음. 졔환의 말을 통해서도 녘이 그리 살갑지는 않구나 하고 느꼈던 빈은 그저 조잘대는 제환의 목소리가 좋아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음. 얇게 입고 집을 나섰다가 감기에 걸렸을 때에도 화를 내려다가 웃는 졔환의 얼굴에 화내지 못했었음. 그날따라 늦잠을 자서 녘이 나가는 소리에 후다닥 따라나가다보니 겉옷을 입지 못했다고 그런데 정말 하나도 춥지않았다고. 진짜 더울정도여서 감기 안걸릴 줄 알았는데 걸렸지 뭐야 하고 헤헤 웃는 졔환이었음. 그리고 그 다음날. 졔환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음. -빈아. 나 병원 가야할 것 같은데. 감기...감기때문에... 그 말을 끝으로 끊긴 전화에 달려간 빈은 피로 흥건히 젖은 졔환을 안아들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병원으로 달려야만 했음.
졔환의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졌음. 울컥이며 올라오는 토혈은 그 빈도수가 갈수록 늘어났음.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졔환은 녘에 관한 이야기 조차 하지않았음. 보다 못한 빈이 묻자 그제야 사과해야 할 일이 있다고만 했음. 그리고 빈이 녘을 만나고 오늘 병원에서까지 만나게 되어버린 것임. 녘은 가만히 빈의 말을 들으며 졔환을 떠올렸음. 뺨을 동그랗개 부풀리며 웃는 얼굴. 기침을 토해내는 얼굴. 입을 가로막은 손가락 사이로 비치던 피. ....피....피! 토기가 일어 녘이 입을 막고 화장실로 달렸음. 덩달아 놀라 달려온 빈이 등을 두들겼지만 토해내는 것 없이 녘은 헛구역질만 해댔음. 터져나온 것은 윗 속 가득찬 음식물이 아닌 눈물이었음 녘은 빈에게 양해를 구하고 졔환의 병실로 들어섰음. 호흡기를 달고서도 색색거리는 숨을 내뱉으며 졔환이 잠들어있었음. 녘은 ㅈㅖ환에게 햤던 모진 말들이 비수가 되어 저에게 돌아오는 것을 느꼈음. 졔환이 깰까 마른 손가락 하나 쥐어보지 못하고 녘은 도망치듯 병실을 나섰음. 학교가 끝나고 녘은 야자를 뺏음. 아버지 병문안이 이유였지만 녘은 아버지병실을 경유해서 졔환에개로 향했음. 빈이 말해두었는지 녘을 맞는 졔환은 처음처럼 도망치진 않았지만 조금은 불편해보였음. 호흡기라도 떼야갰다는 걸 말리느라 진이 빠진.녘은 침대 옆 간의 침대에 털썩 몸을 앉혔음. -형, 저기... 전에는 미안했어요. -뭐가? -형 목소리 듣기싫다고 따라오지말라고 했던거요. -아니야 내가 귀찮게 군 거 맞잖아. 미안해 -아니, 아니에요 진짜! 귀찮지않았어요. 그... 생각해보니까 혼자사는 데 나한테 매번 아침저녁으로 인사건네주고 하는 사람 형밖에 없더라구요. 그래서 저기....어.... 횡설수설하는 녘을 보며 졔환이 웃었음. 갈라진 입술이 튿어저 핏방울이 흘렀지만 아야야 하는 소리를 내면서도 졔환은 즐겁개도 웃었음. 젖은 수건을 다급히 들어 입술을 닦아내던 녘도 웃음이 옮아버렸음. 마주보고 실없이 웃다보니 시선을 내려 먼저 피한 것은 졔환이었음. -지금 되게.. 부끄럽다 -왜요 -그냥.. 옷두 환자복이구 살도 엄청 빠졌구 잊술도 다 터져가지구 안 예쁘잖아
-예뻐요. 지금도 예뻐. 형 웃는 거 나 되게 좋아해요. 형 나 볼때 엄청 예쁘게 쳐다보고 웃을 때 엄청 예쁘게 웃어요. 입술을 꾹꾹 눌러 닦으며 녘이 귓불을 붉힘. 그 귀를 바라보는 졔환도 똑같이 귀를 붉혔음. 녘은 눈과 입술을 양 옆으로 늘리며 웃었음.
-저 갈게요. 내일 또 올게요 이불 위에 놓인 손을 한번 잡아 쓸어보고 튿어진 입꼬리 끝자락에 짧게 입술을 눌렀다가 떼었음. 쪽- 하는 부끄런 소리가 나기 무섭게 뒤돌아선 녘이 도망치고 졔환은 돌아온 빈이 놀라 소리지를 정도로 핏방울이 스며나오는데도 웃음을 멈추지 못했음. -고만 좀 웃어 입술이 이게 뭐야! -빈아, 나 너무 살고 싶은데, 늦었다 그치? -...치료 꾸준히 받았잖아. 형만 안 놓으면 돼. 이제라도 꼭 잡고 놓지않으면 돼. -응
녘은 매일 졔환의 병실을 찾았음. 야자는 어차피 자율이라며 졔환을 안심시키고는 졔환의 옆에 문제집을 펼쳐 여기서 공부하면 돼요 라며 웃었음.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녘은 방학을 맞았음. 보충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일주일이라는 짧은 방학이었지만 녘은 다가오는 리스마스애 들떠서 신나게 졔환의 병실로 찾아왔음. 그런데 옷을 갈아입는 졔환과 가방을 챙기는 빈이 있었음. -어...? 형 어디가요? 녘이 멍하니 묻자 가방에 옷가지를 집어넣던 빈이 녘을 발견하곤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음. -응, 퇴원해. 집에가야지
가볍게 말하는 졔환에 녘은 조금 마음이 놓였음. 몸이 좋아져서 퇴원하는 구나 하는 마음에 절로 웃음이 나왔음 -형 그럼 나랑 놀아요! 내일 크리스마스 이브잖아. 나 오늘 방학했어요 그 말에 졔환은 잠시 빈을 바라보았음. 빈은 어깨를 으쓱이며 옷만 따뜻하게 입고 나가라고 당부만 했음.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 녘은 아침부터 샤워를 하고 부산스레 영화를 예매했음. 날이 날인지라 시간대가 애매했지만 이거라도 어디야 했음. 당장에 달려가서 졔환의 집 문을 두들겼음. 새하얀 니트를 입은 졔환이 문을 열고 조금만 기다리라며 겉옷을 입었음. 빈에게 받앗던 당부가 생각나 집 안으로 쫒아들어간 녘이 모자며 목도리며 잔뜩 챙겨 졔환을 감쌌음. -야아 감기걸려 죽기전에 숨막혀 죽겠어어 -에헤이 안죽어요 안죽어 졔환은 투덜거리면서도 가만히 녘의 손을 받았음. 면허가 없는 졔환과 미자인 녘은 손을 붙잡고 버스를 타러 갔음. 매일 빈이 운전하는 차에 보물단지처럼 다니던 졔환은 버스가 오랜만이라며 예쁘게도 웃었음. 그치만 오랜만에 외출인 탓에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부터 졔환은 지쳐버렸음. 녘은 밖에서 저녁을 사먹으려던 계획을 바꿔 집으로 향했음. 빈에게 주의해야할 음식이 있냐고 묻는 문자를 전송하며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든 졔환을 보았음. 빛을 보지 못한 탓에 새하얀 피부와 유난히 오똑한 코. 뺨에 그늘을 지게 만드는 속눈썹. 괜히 쥐고있는 손에 힘을 준 녘은 주변을 바쁘게 둘러보다 머리칼 위로 입술을 내렸음. 못되게 굴던 한사녘 나가뒤져라. 이렇게 예쁜 형인데... 본인의 머리를 콩콩 때리다 내려야 할 정류장이 다가와서 졔환을 깨웠음. 부산스레 집으로 들어와 난방을 틀고 나니 빈에게서 답이 도착했음.
'그냥 먹고싶은 거 먹어. 크리스마스 이브니까' 그 답을 전해주니 졔환이 신이 나서는 피자, 치킨, 햄버거! 를 외쳤음. 세개는 다 못 먹는다고 말리는 녘에 의해 그럼 피자!치즈 어어엄청 많이 올라간거! 로 정한 졔환은 소파에 앉아 엉덩이를 들썩였음
-그렇게 좋아요? -응 나 진짜 그런거 못 먹은지 오래됐단 말이야. 빈이가 웬일이래애애 졔환이 입을 크게 벌려 예전처럼 웃었음. 그런게 입가에서는 또다시 핏방울이 맺혔음. -아이구... 립밤 발라야겠다 녘이 주머니를 뒤적여 림밥을 꺼냈음. 손가락에 잔뜩 짜고서는 졔환의 입술을 발랐음. 너무 많이 발라서 입술이 번들거리자 졔환이 입술을 내밀었음
-에퉤퉤! 입에 다 들어왔어!맛없어ㅠㄴㅠ 너무 많이 발랐잖아아 칭얼대는 졔환의 입술에 녘이 제 입을 붙였음. 질척이는 졔환의 입술이 녘의 혀에 의해 갈라지고 두 혀가 만났음. 체온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졔환의 몸 만큼이나 온도가 내려간 졔환의 입 안이 녘에 의해 데워졌음. 졔환이 숨을 쉴 수 있게 간간히 떨어졌다가 급하게 합쳐지던 입술이 떨어지고 졔환은 백지처럼 하얀 얼굴에 홍조를 띄웠음.
-이러면 립밤 딱 적당하죠? 녘이 씨익 웃자 졔환은 눈만 동글동글 굴렸음. 때마침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어깨를 팍 밀쳐 품을 벗어나며 지갑을 챙겨드는 졔환의 귀가 창밖의 노을과 같은 빛이라 녘은 배를 잡고 웃었음.
바닥에 피자를 펼쳐놓고 졔환은 끊임없이 입술을 오물대며 피자끝을 깨물었음. 병원에 있을 땐 약과 치료, 맛없는 병원밥의 콜라보로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던 졔환이었는데 잘 먹는 모습에 녘은 두 손을 놓고 졔환만 바라보았음 -안뺏어먹으니까 천천히 먹어요 콜라도 좀 마시고.. 하나하나 챙기며 정작 본인은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녘은 피자상자까지 말끔히 정리하고 소파에 앉아 배를 두들기는 졔환의 곁으로 앉았음. -아 진짜 맛있었다. 그치? -형이 다 먹어서 난 맛도 못 봤어 -아아니야아!
녘은 발끈하며 몸을 일으키는 졔환의 팔을 끌어당겨 안았음. 품 안에서 꼬물거리는게 간지러워 웃으며 천천히 등을 쓸어내린 녘이 졔환의 턱 언저리에 쪽 뽀뽀를 했음. -매일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어요. 영화보고 맛있는거 먹고 형이랑 이렇게 안고 있고
-응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 -아, 형 우리집에 핫초코 있는데 후식으로 핫초코 마실래요? -어? 초코! 나 진짜 좋아해 초코! -흐흫 그럴 줄 알았어요. 잠깐만 있어요 다녀올게 녘이 졔환의 어깨를 안았던 팔을 풀어내며 몸을 일으켰음. 바로 앞 집인데도 멀게 느껴서 빠르게 다리를 놀리며 녘이 집으로 건너갔음. 찬장에 쳐박힌 핫초코를 두 봉지 꺼내 흔들며 졔환의 집 문을 여는데 거실에 앉아있던 졔환이 없었음.
-...형? 거실과 베란다 졔환의 방까지 둘러보다가 화장실에서 들리는 소리에 화장실로 향했음. 변기 앞에 졔환이 반쯤 무너져 있었음. -형, 형 괜찮아요? 형? 눈물까지 떨구며 졔환은 토악질을 해댔음. 나가라고 녘을 밀치는 손길이 미약해서 녘은 그 손을 잡으며 등을 두들겼음. 위액까지 토해냈는데도 졔환의 토악질을 멈추지않았음. 온 얼굴이 붉어지도록 계속되는 기침과 헛구역질에 녘은 덜컥 겁이 났음. 덜덜 떨리는 손으로 빈에게 전화를 걸었음. -형, 빈이형, 졔환이형이 계속 토해요. 이미 토할 건 다 토했는데도 계속... 계속... 혼이 나가 횡설수설하는 녘에 빈이 금방가겠다며 기도가 막히지않게 손가락을 넣어 확보해주라고 조언을 남겼음. 녘은 손가락으로 입 안에 남아있는 이물질을 모두 긁어내고 혀를 꾹 눌렀음. 어느새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졔환은 껄떡이며 넘어가는 숨을 붙잡고 녘을 바라보았음.
-빈이 형 온대요. 오면 병원가요. 괜찮아, 다 괜찮아요. 울지마요 졔환보다 더 울고 있는 건 녘이 자신이면서 녘은 졔환의 눈물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며 졔환를 달랬음. 그런 녘의 기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계속해서 기침은 터져나왔음. 급기야 토혈까지 했음. 처음으로 보는 새빨간 피에 녘은 거의 패닉이 되었음. 사시나무 떨 듯 떨며 졔환를 가슴 가득 끌어안았음. 헐떡이는 가슴이 맞닿고 졔환이 녘의 어깨에 고개를 괴었음. -형, 괜찮아. 괜찮아요. -컥, 쿨럭, 크억, 괜찮다은 말은 사실 졔환이 아닌 녘 자신을 향한 암시였음. 피를 토해내면서도 녘의 등을 쓰다듬은 졔환이 느껴져서 녘은 똑같이 등을 쓸어주며 울었음. 빈이 도착했을 때 졔환은 혼절이라도 한 듯 녘에게 안겨있었고 녘은 갈빛으로 반쯤 굳은 피를 옷과 손에 잔뜩 뭍히고 주저앉아있었음.
병원으로 간 졔환은 수액을 맞으며 잠이 들었음. 주치의라는 하얀 남자가 눈을 잔뜩 찢으며 달려왔다가 피에 젖어 패닉에 빠진 녘을 보고는 어깨믄 다독이며 돌아갔음. 물에 적신 수건을 건넨 빈이 녘의 옆에 앉았음. -괜찮아 빈의 말에 녘은 다시 울음을 터뜨렸음
-죄송해요. 밖에 나가자고 한 것도 피자 먹자고 한 것도... -괜찮아. 분명 저 형 과식했을거야, 맞지? 녘을 달래며 빈이 슬몃 웃었음. 짐을 덜어주려 하는 것이 보였지만 그럼에도 녘은 위안을 얻었음. -병원에서 백반이나 죽같은거만 먹다가 그 기름진 걸 위에 때려넣었는데 탈 안나고 베겨? 그치? 손에 쥐고만 있는 수건을 뺏어 손에 묻은 피를 닦으며 빈이 녘을 달랬음. 그리고 녘은 알게되었음. 졔환은 몸이 나아져 퇴원을 한 게 아니었음. 하루하루 죽어가는 몸에 더 이상 손 쓸 방법이 없어 남은 시간이라도 병원이 아닌 곳에서 지내기 위함이었음. 빈은 제 친구에게 전화를 걸며 잠시 병실을 비웠고 녘은 잠이 든 졔환을 내려보았음. -진짜... 가요? 오늘처럼 이렇게 아프다가 가는거에요? 안 갔으면 좋겠어요. 형이 매일 아침마다 인사를 건네줬음 좋겠어. 오늘처럼 나랑 영화도 봤음 좋겠고 오늘 못 먹은 치킨이랑 햄버거도 먹으러 갔음 좋겠어 짓무른 눈가가 따가웠지만 녘의 눈에서는 또다시 눈물이 흘렀음. 졔환의 손이 너무 차서 눈물이 났음.
제환은 밤을 꼬박 응급실에서 보냈음. 옆에 누워 새우잠을 자던 녘은 빈이 친구에게 부탁해 가져다 준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피 묻은 옷을 빈에게 맡겼음. 저를 식이라고 소개한 빈의 친구는 졔환과도 아는 사이인 듯 졔환의 옷도 챙겨왔고 빈이 졔환의 옷을 갈아입히는 동안 녘을 데리고 응급실을 나섰음. -많이 놀랬겠네 편의점에서 산 병음료라도 따뜻한 유자차를 건넨 식이 녘의 표정을 살폈음. 녘은 그저 병만 뽀득 소리가 나게 문지를 뿐이었음 -퇴원을 하길래 단순하게 몸이 나았구나 했어요.. -그럴 수 있지
-내가 괜히 영화보자그러고... 형을 힘들게 했나봐요 -그렇게 놀러다니라고 부러 퇴원한건데? 잘했어. 계속 형 좀 놀아줘. 바쁘겠지만.. 이졔환 병원에만 있는다고 엄청 좀 쑤셔했거든 식이 웃으며 녘의 머리를 흐트렸음. 나랑 빈이는 곁에 붙어잇고 싶어도 일때문에 못 그러니까... 염치없지만 부탁할게. 녘이 고개를 끄덕였음. 졔환이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나더라도 당장은 웃는 졔환의 얼굴을 보고싶은게 솔직한 마음이었음. 그 순간 식의 폰이 울렸음. 졔환이 잠에서 깨었으니 집으로 돌아가자는 빈의 연락이었음. 디급하게 응급실로 돌아가자 졔환이 침대에 앉아있었음. 눈이 마주치자마자 또다시 울려는 듯 입을 삐죽이는 녘을 보며 졔환이 웃었음 -녘아. 좋은 아침. 메리크리스마스 그제야 오늘이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깨달았음. 나때문에 크리스마스를 응급실에서 맞았네? 미안해. 샐쭉 웃는 졔환을 끌어안고 녘은 조금 울었음. 사실 엉엉 울거 싶었지만 주변에 눈들이 너무 많아서 꾹꾹 참았음. 졔환은 이왕 빈이도, 식이도 모인 김에 공원에라도 가자고 했음. 빈은 큰 눈을 부라리며 반대릉 했지만 크리스마스잖아 라며 옷자락을 흔드는 졔환에게 결국 지고 말았음. 빈의 고집으로 겹겹이 옷에 둘러쌓인 졔환이 공원으로 나섰음. 두터운 옷 때문에 펭귄같아 웃음이 터지려는 걸 참던 녘은 시원스레 웃으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식때문에 같이 웃어버렸음. 그리거 그런 그들을 빈이 카메라로 담았음. 제법 큰 카메라에 녘이 눈을 둥글게 떴는데 오 우리 찍어주는거야? 이야 유명작가님 모델이 되다니 출세했다! 며 식이 너스레를 떨었음. 옆에서 정말 기쁘다는 듯 웃는 졔환 때문에 빈은 귀 뒤를 긁었음
-차에 들고 다니는 카메라라 스튜디오에서 쓰는 카메라보다 엄청 뒤떨어지는 건데... 쑥쓰러워하길래 녘은 이것도 엄청 비싸보이는데요? 하며 카메라앞에서 포즈를 취했음. 웃고 떠들며 공원을 거닐던 네 사람은 작게 터진 졔환의 기침을 시발점으로 후다닥 후끈한 카페로 달려갔음. 따뜻한 차를 주문하고 옷을 벗어내리려는 졔환과 계속 입고 있으라는 빈의 작은 말다툼을 구경하니 녘은 어젯밤 피를 토하던 졔환이 꿈만 같았음.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새에 대뜸 말을 던졌음 -형 연말에 해돋이 보러갈까요?
그에 졔환이 반색을 했음. 해돋이면 바닷가에 가겠다는 말이냐며 또 화를 내려는 빈을 식이 말렸음. -야, 녘이가 같이 가는데 무슨 걱정이야. 브로콤새끼 진짜 빈이랑 식이도 함께하잔 뜻을 내포한 말이었는데 둘은 손을 저었음. 연말에 행사들이 많아서 얘나 나나 바빠. 한탄같은 빈의 말이 이어졌음. 가게 해쥬는 대신 서울에서 가까운 인천으러 갈 것. 빈이 조건을 내걸었음. 해돋이 보러가는데 웬 인천이냐 하는 식의 반발은 발을 짓밟는 빈에 의해 쏙 들어가고 녘은 일단 '바다'라는 것에 신이나 아무래도 상관없어 보였음. 카페에서 몸을 녹이다 다시 공원을 조금 산책하다 네 사람은 졔환의 집으로 돌아왔음. 약해진 몸에 늘어난 것은 잠 뿐인지라 졔환은 녘의 등에서 잠이 들었음. -형 좀 부탁할게. 바쁘다는 말 진짜 빈 말이 아니라서... 빈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녘에게 봉투를 건넸음. 두툼히 들어잇는 돈 때문에 녘이 펄쩍 뛰며 거절했지만 바다가서 어디 거지같은 여인숙에서 형을 재울 생각이냐는 빈의 일침에 조용히 돈을 받았음. -호텔에서 자. 밥도 비싸고 좋은 밥 사 먹어.
-응 그래 녘아. 여기서 제일 비싼거로 주세요~ 해. -넌 좀 닥쳐 기먼식 투닥이며 빈이와 식이 돌아가고 녘은 졔환을 침대로 내렸음. 고요히 잠든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 옆으로 몸을 뉘였음. 새해가 밝고 신정까지 지나면 학교수업이 시작될 터인데 그 전까지는 졔환과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음. 녘은 졔환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덧그리고 또 덧그리다 잠이들었음. 눈을 감고 손을 뻗으면 절로 졔환의 얼굴이 그려질 수 있기를
녘의 바람과는 달리 졔한의 몸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나빠졌음. 햄버거나 치킨은 커녕 담백한 백반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속이 더부룩하다고 징징거렸음. 결국 죽을 먹어야만 했는데 녘은 졔환이 흰죽을 숟가락으로 푹푹 찌를때마다 제 마음이 찔리는 것 같았음 녘이 해줄 수 있는 건 매일 다른 죽을 사오는 것과 마주않아 함께 먹어주는 것 뿐이었음. 그 미안함이 차곡차곡 쌓이는 중 31일이 다가왔음. 여행을 고대하고 있던 탓인지 그 전날까지는 무거운 몸을 녘의 어깨에 기대고만 있던 졔환은 신이나서 가방을 쌌음
-형 우리 저녁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바다 나가야하니까 옷 따뜻하게 챙겨요 -응응. 녘아 우리 불꽃놀이두 하까? -일찍 자야한다니까... -역시 밤바다엔 불꽃놀이지!! 전혀 녘의 말은 듣지도 않고 홀로 조잘거리는 졔환이 귀여워 녘은 결국 그래요 불꽃놀이 우리 종류별로 해봐요 빈이형이 돈 진짜 많이 줬어. 라고 답했음. 느즈막한 오후, 손이 빠른 빈이 덕에 구한 기차표를 가지고 식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기차역으로 향했음. 운전하는 식이 짜증을 낼 정도로 상체를 뒤로 돌려 졔환에게 잔소리를 하던 빈은 걱정스런 표정을 애써 감추며 졔환의 손을 잡았음. -조심히, 잘 다녀와. 도착하면 연락하고... -응응. 걱정마 졔환이 녘의 팔에 매달려 기차 플랫폼으로 사라질때까지 빈은 졔환에게서 눈를 떼지 못했음 -하루 외박하는 건데 유난이야 -그냥..불안해
-잘 다녀올거야. -그렇겠지...? 한숨을 포옥 쉰 빈이 마른 세수를 하며 돌아섰음. 마른 뺨과 추운 날씨덕에 조금 빨개진 코 끝. 남들이 보면 유난이라고 욕 할정도로 사랑하는 형 졔환의 모습을 고개를 돌려 한번 더 확인한 후에야 빈은 차에 올라탔음
기차에 탄 졔환은 시종일관 웃는 얼굴이었음. 창가자리에 앉아서는 기차가 출발하기 전부터 창 밖을 요리조리 내다보았음. 어딜봐서 26살인지 모르겠다는 듯 녘이 고개를 저었지만 졔환은 그저 웃기만 했음. -아, 기차 첨 타요? -응. -아...!
들썩이는 엉덩이를 잡아 누르며 녘이 한 마디 쏘았다니 이제 잠잠해졌음. 난 서울이랑 대전 왔다갔다 하면서 기차만 타가지고 기차는 이제 지긋지긋한데... 라 생각했다 옆에서 방글대는 졔환의 손을 잡고 생각을 고쳤음. 형이랑 같이 타는 기차는 너무도 행복하다고..
신나하던 것도 잠시 졔환은 곧 녘의 어깨 위로 고개를 무너뜨리며 잠에 들었음.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떨더니 지칠만도 했음. 녘은 아예 팔걸이를 올리고 졔환을 무릎위로 눕혔음. 조금은 버석이는 머리칼을 만져보다 뾰족한 귀를 만져보다 허벅지 위로 늘어진 손을 끌어 깍지를 끼는 것으로 마무리했음. 안내방송에 번쩍 눈을 뜨니 어느틈에 녘도 고개를 꺾고 자고 있었음. 서둘러 졔환을 깨우고 뻐근한 목을 풀며 기차에서 내리니 지나치는 풍경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고 졔환이 우는 소리를 했음
-올라갈때는 내가 못 자게 계속 옆구리 찌를게요. 올라갈 때 봐요 -올라갈때....그래.... 표정이 가라앉는 졔환을 보곤 턱을 톡 치며 손을 잡아 끌었음. 형 인천에 끝내주는 죽집이 있대요. 결국 향하는 곳은 죽집이었지만 매일 같은 곳이 아니라는 것에 둘은 여행의 기분을 느꼈음. 마주 앉아 죽을 한그릇씩 뚝딱 하고 (기분만큼 몸 컨디션도 좋은 지 졔환도 아주 잘 먹었음) 둘은 숙소로 들어갔음. 짐을 놓고 침대에 뒹굴거리며 쉬다가 짧은 겨울해가 떨어지고 나서 다시 숙소를 나왔음. 바닷가 근처 수퍼에서 불꽃놀이를 종류별로 사고는 서해인 탓에 사람이 뜸한 바닷가로 내려갔음. 생김새부터가 바주카포처럼 생긴 불꽃을 들고 군인 흉내를 내던 졔환은 녘이 불을 붙이자며 다가오자마자 멀찍이 도망쳤음 -형 어디가요? -불 붙여!!!! -하이고
멀리 떨어져서도 두 귀를 꼭 막는 졔환을 보며 웃던 녘은 서툴게 라이터를 부딪혀 불을 붙였음. -녘아 도망쳐!! -뭘 도망쳐요? '펑' -으아아악!!! -내가 도망치라고 했잖아!! 한참을 깔깔대며 큰 폭죽과 작은 폭죽을 쏴댔던 둘은 퉁퉁했던 검은 봉투가 홀쭉해져서야 바닥에 지친 몸을 앉혔음. -아 재미있었다아 -재밌었어요? -응. 특히 너 놀라서 펄쩍 뛰는 게 제일 재미있었어. -치사하게 혼자 도망가있고 -내가 도망치라고 했잖아아 추운 지 코를 훌쩍이는 졔환을 끌어안고 괜시리 툴툴대던 녘은 빨갛게 언 졔환의 뺨에 입을 맞췄음. 쪽쪽 연이어 떨어지는 입술이 졔환이 눈을 뜨지도 못하고 뭐야아 소리쳤지만 곧 입술로 내려앉는 키스에 바짝 힘을 주었던 목을 풀어냈음. 그 언젠가보다 더 냉한 입안을 헤집으며 녘은 갈증을 느꼈음. 녘은 졔환이 짤막한 키스도 버거워한다는 것을 알아서 키스를 짧게 끊어내가 입술을 떼었음. 하얗게 말랐던 입술에 보기좋게 핏기가 돌아서 녘은 살몃 웃었음. -형. 들어가서 조금이라도 자구 다시 나와요. 졔환의 얼굴이 조금은 피곤해보여 녘은 몸을 일으키려 했음. 졔환을 일으키려던 손은 도리어 녘이 다시 앉게끔 했음. -밤 새자 엉거주춤 상체를 숙인 녘을 올려다보며 졔환이 눈을 맞춰왔음. 동그란 두 눈이 조금 물기에 젖은 것 같아 녘은 어색해진 두 눈을 굴렸음. -알겠어요. 뭘 또 그런 표정까지 지어 빈이형한테는 초저녁부터 자구 새벽에 일어났다고 말하기에요? 녘이 허락의 말을 하자 그제야 졔환이 웃었음. 당연하지 빈이 잔소리 나도 진짜 싫어해! 다시 장난스레 붕붕 떠오르는 목소리에 녘이 안심을 하며 털썩 앉았음. -추우면 말해요. 호텔가서 담요같은 거라도 들고 오게 -아니야. 옆에 있어줘. 이렇게 붙어있으면 안 춥잖아. 다시 일어날 태세로 물으니 졔환이 바짝 다가와 앉으며 녘의 팔을 껴안았음. 그 행동이 귀여우면서도 의아한 녘은 고개를 갸웃거렸음. -오늘따라 이 형이 왜 이래~? -마지막날이잖아 올해의 마지막날! 눈을 또 동그랗개 뜨며 졔환이 검지를 세워 휘둘렀음. 푸흐흐 웃은 녘은 그 손가락 끝을 살짝 깨물고는 제 주머니에 쏙 넣었음. -조금있으면 올해의 첫날도 시작될거에요. -응...
졔환이 녘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커다란 녘의 손을 두 손을 잡았음. 뜨거울 정도로 따뜻한 손을 조물조물 주물러도 보고 괜시리 크기도 비교해보던 졔환은 녘아. 나즈막한 목소리로 녘을 불렀음. -곧 수험생이네 -아... 말하지마요. 우울해졌어
순간 불퉁거려지는 녘의 목소리에 쟌이 어깨를 힘없이 떨며 웃었음. 손을 이리저리 만지는 건 멈추지 않았음 -녘이는 공부 잘하니까 꼭 열심히 해야해? -열심히 하구 있어요오. 형 아프니까 내가 먹여살려야지 -열심히 공부하구, 가고 싶은 대학도 가구
-당연하지 -대학가서는 미팅 같은 것도 많이 해보구.. 난 못 해봤거든. -무슨 미팅.. -좋은 사람도 만나구 그 사람이랑 예쁘게 연애도 해보구 -형 녘의 목소리가 분노와 슬픔으로 떨렸음. 손을 만지는 졔환의 손을 떼어내고 얼굴을 보고 싶은데 졔환이 온 몸에 힘을 주고 버텨서 결국엔 몸에 힘을 풀고 멍하니 졔환의 머리만 내려다봤음. -녘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형이 있어야 행복해. -난 녘이 만나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정말 행복했어 -왜 짧은 시간이야, 형. 우리 계속 같이 있을거잖아요
졔환의 손이 조금이 느려지고 완전히 멎어버리자 녘은 졔환의 어깨를 감싸쥐고 제 어깨에서 떼어냈음. 화를 내야할까, 아니면 울어버려서, 마음을 잔뜩 아프게해서 미안하게 만들까 고민을 하다 마주친 두 눈이 저보다 더 일그러져있어서 녘은 굳혔던 얼굴을 풀어냈음. -왜그래요, 형... 나 불안해. -나는, 안되니까, 나는 이제, 미래가 될 수 없으니까 -형 제발, -나에겐 오늘이 정말 마지막 날이니까. 올해의 첫날은.. -말하지마요. -없어.
졔환의 뺨이 온통 눈물로 젖었음. 빨갛게 얼어버린 뺨위로 흐르는 눈물이 꼭 마지막을 다해가는 졔환의 생명만 같았던 녘은 손으로 눈물을 담아내려 노력했음. 그러나 눈물은 녘의 손까지 적시며 흘렀음. 찬바람 탓인지 아니면 흐르는 눈물 탓인지 졔환의 슘이 불안정해졌음. 쇳소리까지 나는 숨에 녘은 울음을 터뜨리며 졔환을 끌어안았음. -미안해, 네 앞에서, 못 볼꼴을 보이네 그래도, 오고싶어서, 녘이 너랑 꼭, 바다 오고 싶어서, 그래서 욕심부렸어 -괜찮아, 괜찮아요.. 나도 오늘 엄청 행복했는데 뭘.. 그리고 못 볼 꼴 아니에요. 말했잖아요. 형은 항상 예뻐요. 근데 오늘은 특히, 특별히 더 예뻤어 -헤헤...진짜? 그럼 다행이다 졔환이 조금 더 녘의 퓸을 파고들었음. 팔을 허리에 둘러 녘을 힘주어 안으며 숨을 들이쉬어 녘의 향을 맞던 졔환이 잘게 기침을 토했음. 졔환의 등 뒤로 해가 뜨려는 지 어슴푸레헌 빛이 비춰오기 시작했음. -녘아. 나 되게 귀찮았을텐데 예쁘게 봐줘서 고마워 전부터, 꼭 하고싶었던 말이 있는데에... 가쁜 숨을 내쉬며 졔환이 말을 이었음. 녘은 뺨이 눈물과 찬바람에 얼었다 녹았다는 반복하며 빨갛게 부어오르는 것도 모르고 천천히 하라고 독려하듯 졔환의 등을 쓸어내렸음. 한 차례 분노와 절망이 휩쓸고나니 멍할 정도로 잔잔해져버린 감정에 녘은 소리없이 눈물만 흘렸음. -응, 말해요 -사랑해
그 말을 끝으로 녘의 허리를 감았던 팔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음. -형, 형... 형 할 말만 하구 가면 안돼요. 나도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나 형 말 들을게요. 공부도 열심히 하고 가고 싶은 대학도 멋있게 합격할게. 그러니까, 기다려줘요
응.. 들릴 듯 말듯한 답이 들렸음. 사실 그 목소리가 졔환의 목소리인지 새차게 부늨 바닷바람인지 알 수 없었지만 녘은 끊임없이 사랑한다고 속삭였음. 마른 등만 쓸어내리며 따끔거리는 눈을 의미없이 감아내렸다 떠올리는데 눈부신 첫 날이 밝아왔음.
날이 완전히 밝고 나서야 녘은 더듬더듬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냈음. 졔환의 허리를 안고 있는 한 팔은 여전했음. -형...... '............' -.............. '구급차 보내달라고 연락할게.' 녘의 전화를 받은 빈은 밤이라도 샌 듯 잔뜩 잠긴 목소리로 답 했음. 알고 있었다는 듯, 예상했다는 듯 쉬어버린 목소리로 덤덤한 투를 내었음. 멍하니 떠오른 태양만 바라보던 녘은 구급대원들이 다가와 어깨를 흔들고나서야 품에서 졔환을 내려놓았음. 그리고 그제야 알아차렸음. 어깨를 적시던 것은 비단 졔환의 눈물 뿐이 아니었음. 울컥이는 토혈을 삼켜낸 듯 졔환의 입술을 핏물이 가득했고 미쳐 삼켜내지 못한 혈액들이 입가를 타고 녘의 어깨를 적셨던 것이었음. 아이러니하게도 눈을 감은 졔환은 미미한 미소를 짓고 있어 녘은 부질없는 눈물을 또 터뜨렸음. 너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애가 된 기분이라 우악스럽게 눈물을 훔쳐냈지만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는 없었음. 기차를 타고 왔던 바다에서 녘과 졔환은 구급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음. 졔환이 보고싶어 했던 창 밖풍경은 녘도 보지 못했음. 막혀버린 차 뒷편에서 녘은 고요히 잠든 졔환의 얼굴만 바라보았음. 마지막이니까. 정말 마지막이니까. 눈을 감아도 선명히 그릴 수 있도록 눈에 담아둬야만 했음. 병원에 도착하니 어느새 도착한 빈과 식이 녘을 맞았음.
눈시울이 붉어진 주치의가 화장터를 잠시 찾았고, 빈은 작은 단지로 돌아온 졔환을 녘에게 안겨주었음. -수목장, 할거야. 형이 원했어. 그렇게 졔환은 자그마한 나무가 되었음.
녘은 졔환의 바람대로 열심히 공부를 했음. 사실 이렇다할 목표가 없던 녘은 졔환을 보낸뒤로 암전문의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안그래도 상위권이던 성적에 더욱 박차를 가했음. 대학에 합격하던 날, 그리고 졸업장을 받은 날, 녘은 졔환을 찾았고 빈이와 식을 만났음. 대학을 가고 나서는 미팅도 많이 했음. 눈에 띄는 외모때문에 반강제였던지라 어쩔 수 없었음. 물론 목석처럼 앉아서 음식만 먹는 녘 때문에 몇 번 불려가던 미팅은 곧 끊겼음. 식과 빈은 둘의 작업실을 합쳤음. 음악을 하는 식의 작업실 한켠 빈의 인화실이 마련되었고 빈은 스튜디오에서 퇴근을 하면 식의 작업실로 왔음. 녘이 대학을 간 후엔 그 곳에 녘도 종종 함께 했음. 셋을 그들의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마지막에는 꼭 졔환을 떠올렸음. -너 형이 좋은 사람 만나라고 했다며 -그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