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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ometry
만지거나, 보거나, 듣고 그것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초능력.
7.
“그래서. 경찰이 다녀갔다고?”
“응. 차학연, 김원식. 두 사람이었어.”
“흐응…”
"차학연. 맞지?"
"응. 맞아. 5년 전에도 있던 그 경찰. 나 잡겠다고 난리를 쳤는데 갈피도 못 잡았던 그 햇병아리."
남자가 작은 방에 딸린 화장실로 들어가 의미없이 손을 닦았다. 물로만 헹구듯 했던 손짓이 점차 격해져 두 손이 빨갛게 달아오르는데도 남자는 계속해서 힘을 주어 손을 문질렀다. 이미 상처투성이인 피부는 조금씩 덮어내려던 상처를 다시 터뜨렸고 가느다란 핏줄기가 물에 섞여 흘러내렸다.
“홍빈아.”
뒤에 서서 가만히 홍빈이라 불린 남자가 하는 양을 바라보던 택운이 홍빈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제야 멍해졌던 눈에 초점을 돌려낸 홍빈이 택운을 돌아보았다. 적외선 소독기 안에 놓인 새 수건을 꺼내 피가 흐른 손을 잡아 쥔 택운이 그 손을 이끌어 화장실을 나섰다. 면봉에 연고를 묻혀 상처를 치료하는 택운에 홍빈은 손에 닿는 면봉이 싫어 미간을 찌푸리다가도 이내 괜찮은 척 표정을 풀어냈다. 큰 상처에는 밴드까지 붙이고 나서야 택운은 하얀 면장갑을 건넸다. 장갑을 받아 손에 낀 홍빈은 몇 번 주먹을 쥐었다 풀어내며 앉았던 몸을 일으켰다. 테이블 위에 놓인 커다란 소독약 통에 담긴 칼을 꺼내 들었다. 손 위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화려하게 돌아가는 칼날은 홍빈의 손에는 작은 상처 하나 남기지 못했다.
“이상하지 않아? 지난 5년 간, 갈피를 잡지 못하던 경찰이 조금씩 갈피를 잡고 있다는게?”
“…”
"그 사람. 뭔가 있어."
"누구."
"전에 골목에서 차학연 마주쳤을 때, 옆에 있었다던 남자."
"그냥 일반인이라며."
"그래. 그냥 일반인인데 집에 갈 때마다 김원식이, 아니면 차학연이 집 앞까지 데려다준다구. 다 큰 남자를. 키도 우리랑 비슷한 건장한 남자를."
"..."
"이상하지? 가져와."
***
책상 앞에 앉아 하얀 불빛을 내는 모니터를 바라보는 원식은 의미없이 턱을 괸 손을 까닥였다. 학연과 재환이 목격한 사건 이후, 범인은 한동안 조용히 지내는 것 같았다. 3-4일을 간격으로 발생하던 살인사건도 일주일 째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목격자라는 이유로 재환에 대한 과보호를 행한지도 어언 일주일. 할 일 없으면 퇴근하라는 학연의 잔소리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는 원식은 사실 재환의 퇴근 시간을 기다렸다. 짧은 바늘일 1을 지나고 긴 바늘이 6을 향해 달려갈 때면, 원식은 벌떡 일어나 자켓을 들고 재환의 Bar를 향해 달리곤 했다. 그리고, 오늘도 여느때 처럼 가만히 시곗바늘을 살피고 있었는데.
'따르릉-'
반 쯤 졸고 있는 상혁을 의자에서 떨어뜨릴 정도로 날카로운 전화벨이 울렸다. 한층 짙게 그어진 짝 쌍커풀을 비비며 상혁이 수화기를 들었다.
"네, 서울 중앙 지검, .... 네? 알겠습니다. 금방 출동하겠습니다. 현장을 되도록이면 훼손하지 마시고, 혹시 근처에 범인이 남아있을 수도 있으니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있으십쇼."
전화를 끊는 상혁의 얼굴이 무섭도록 굳어져있었다. 시신들 사진을 바라보며 펜을 돌리던 학연이 그런 상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왜? 라고 묻는 듯한 얼굴에 상혁이 목이 메이는 지 마른 침을 삼켰다.
"13번째 희생자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포장마차를 하는 사람인데 퇴근길에, 도로 옆 배수로에 유기된 시신같은 걸 발견한 것 같답니다. 어둡고 무서워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여성의 시신인 것 같다고..."
학연과 원식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동시에 시끄럽게 의자를 넘어뜨리며 몸을 일으켰다. 문을 향해 달리는 두 다리에 상혁이 허둥대며 그 뒤를 따랐다.
"한 순경은 서 지켜!"
돌아보지도 않고 소리를 지르는 학연에 의해 주인 잃은 대형견 마냥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러니까, 미래의 강력반인데... 너무한다 싶지만 동시에 비어버릴 서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인지라 깨어질 듯 흔들리며 닫히는 유리문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전에 마감을 온전히 맡겨버리고 일찍 퇴근했던 것이 미안해, 재환은 동료를 먼저 보내고 혼자 Bar에 남았다. 학연과 귀가하던 중 범인을 마주한 뒤로 가끔가다 악몽을 꾸기도 했지만 2시가 되면 원식이 올 터이니 어두운 귀가길은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뜨겁다 싶은 물로 닦은 와인잔들을 마른 수건으로 한번 더 닦는데 카운터 앞 쪽에 충전하고 있던 휴대폰이 무거운 진동소리를 내었다. 왠지 모를 서늘함에 어깨를 굳힌 재환은 숨을 삼키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김 경위님' . 깜빡이는 메신저의 주인이 원식이기에 짧게 숨을 토해냈다. 절로 미소를 짓는 입술을 의식하지 못하고 동그란 손 끝이 원식의 이름을 눌렀다.
'급하게 사건이 발생해서 현장에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오늘은 집에 못 데려다 줄 것 같은데 어쩌죠? 혹시 많이 무서우면 말해요. 한 순경한테라도 같이 집에 가주라고 부탁할게. 난 얼마나 걸릴 지 몰라서 기다리라고 못하겠어요. 미안.'
아이구... 원식을 보지 못한다는 것과 늦은 시간에도 바쁜 원식에 대한 안타까움에 올라가던 입꼬리가 축 내려왔다. 아랫입술을 삐죽이며 원식의 메세지를 쓸어보다 톡, 토독- 답문을 써내려갔다.
'괜찮아요. 이제 많이 안 무섭구, 그 때 그 일 이후로 가로등도 불 다 밝혀주잖아요. 혼자 갈 수 있어요.'
곧장 오지 않는 답에 한동안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하다가 겨우겨우 몸을 돌렸다. 다시 와인잔을 닦으며 재환은 조금 전보다 손이 느려진 것을 깨달았다. 그때, Bar 문에 달린 작은 종이 울렸다.
"죄송합니다만 지금은 영업 시간이 ..."
습관적으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문 앞에 선 남자는 온통 새카만 옷을 입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 검은 옷과 검은 머리칼 사이로 홀로 하얀 얼굴. 손에 쥐고 있던 와인잔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연약한 유리가 깨어지는 파열음에 맞춰 한 발 떼어 다가서는 남자를 바라보며 재환 역시 바닥을 향해 추락했다.
'형도 해.'
'...'
'재미있을 거 같다고 생각해왔잖아. 난 형을 잘 알아. 형은 나랑 닮았어.'
옆으로 길게 찢어진 입술이 말을 걸었다. 아무런 감정 없이 검게 가라앉아 있던 남자의 눈동자에 파동이 일었다. 당황. 충격. 아니. 그런 것이 아니었다. 즐거움. 붉은 입술을 따라 남자의 입술도 양 옆으로 길게 찢어지기 시작했다. 그 소름끼치는 두 미소에 달아나려 몸을 돌려세우다 손목이 붙잡혔다. 검은 소용돌이에 빨려들어 발버둥치다 두 눈을 뜨니, 남자가 손에 칼을 쥐고 서 있었다. 저를 향해 내려찍는 손에 두 눈을 감았지만 날카로운 칼날은 재환을 너머 여자를 베어냈다. 얼굴에 튀어오르는 뜨거운 피에 남자가 즐겁게 웃었다. 무표정이 어울리는 냉랭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소년의 미소가. 지나치게 순수해서 잔혹한 미소가 그려졌다. 검은 옷이 젖어들었다. 새빨간 핏물을 어떤 자욱도 남기지 못하고 처음부터 옷의 일부였던 양 스며들었다. 울음이 터질 것 같아 숨을 삼켰다. 아프도록 뛰는 심장소리가 귀에 울렸다. 점차 커지는 소리가 큰 북을 치는 것처럼 온 머리를 울릴 때쯤, 재환은 거칠게 숨을 들이쉬며 감겼던 두 눈을 떠올렸다.
"깼다."
허스키한 듯 맑은 듯 오묘한 미성이 들렸다. 부산스레 눈을 깜빡여 초점을 맞추자니 케이블 타이로 묶인 손목이 눈에 들어왔다. 버둥대며 몸을 일으키려다 마찬가지로 속박된 발목에 꼴사납게 꿈틀대기만 했다. 커다란 손이 다가와 재환의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과 묘한 비린 향. 뺨에 닿은 시멘트보다 더 차가운 손 끝. 어울리지 않게 다정한 손길이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하고 재환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안녕, 이재환."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던 남자였다. 핏물로 젖었을 검은 옷을 입고 있던 남자. 차마 바라보지 못해 어깨를 타고 올라와 뺨을 메만지는 긴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칼을 쥐던 손. 학연이 보여주었던 흉기와 같은 칼. 남자가 범인인걸까. 아니. 다른 사람이다. 손을 뒤따라오는 이미지들에 재환이 눈물을 삼켰다. 공포로 떨리는 두 눈을 겨우 돌려 남자의 얼굴을 마주했다. 재환의 표정을 살피고 있는 남자는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진 사람 같았다. 하얀 피부와 상반되는 검은 머리칼. 검은 눈동자. 날카로움을 가중시키는 눈 밑에 찍힌 검은 점.
"정...정택운...씨..."
"안 알려줘도 아네. 그래서 넌 뭐야?"
턱을 따라 선을 긋던 택운의 손이 목으로 내려왔다. 크게 요동치는 동맥을 익숙하게 집어낸 택운이 그 위로 손가락을 두들겼다. 대답은 않고 마른 침만 삼키고 있자니 커다란 손이 목을 감싸왔다. 가늘게 떨리고 있는 생명을 쥐어버릴까, 그냥 조금 더 숨을 쉬게 둘까. 포식자처럼 흉흉한 눈을 빛내며 답을 강요했다.
"나는, 보여요. 당신을 보고 있으면 당신도, 그 남자도. 알 수 있어요."
"그 남자?"
"당신이 돕는, 그 살인범. 이홍빈."
힘이 들어가는 손아귀에 두 눈을 꼭 감아내렸다. 끊어지는 숨으로 홍빈의 이름을 내뱉자 택운의 손이 힘을 풀었다. 화가 났을까. 나도 지금까지의 희생자들처럼 온 몸이 난자 당해서 죽어버리는 걸까. 그러나 슬몃 뜬 눈 사이로 마주친 택운은 미미하게 웃고 있었다.
"역시. 너구나. 경찰들을 돕던 것."
목에서 손을 뗀 택운이 몸을 일으켰다. 옷을 털어 정리하며 주머니에 손을 욱여넣었다. 넓고 어두운 창고에 재환을 혼자 두고 떠나버릴 것 같아 재환이 다급하게 택운의 뒷모습에 말을 던졌다.
"내가, 당신들에 대한 단서를 알려줘서, 화가 난 건가요? 그래서 날,"
"아니. 화 난 건 아니야. 오히려 즐거워하지."
"즐거워...한다구요?"
"그래. 너무 뜬구름만 잡으면 재미없잖아. 널 데려온 건... 지금까지 니가 준 단서로도 충분하기 때문이야. 더 많이 알게되면, 재미없잖아."
"..."
"게임이 끝날 때까지 넌 그냥 여기 가만히 있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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