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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ometry
만지거나, 보거나, 듣고 그것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초능력.
5.
"저기..."
"네, 무슨 일.. 어? 김 경위님 손님?"
늦은 오후, 한산한 경찰서 문을 열고 재환이 들어섰다. 간만에 당직을 면해 전날 밤 늦게까지 게임을 한 상혁이 멍한 눈을 끔뻑이다 재환을 맞이했다. 한 번 본 재환의 얼굴을 용케 기억해내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라도 되는 양 반색을 하며 재환의 곁으로 다가섰다.
"김 경위님이랑 차 경감님은 잠깐 감식반 다녀오신다고 가셨어요. 기다리실래요?"
"아...아뇨. 일을 가야해서... 저 그럼 메모 하나만 남길 수 있을까요?"
재환은 잠시 망설였다. 11번째 희생자를 미리 알려주고 범인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긴 하였으나 아직도 학연이 저를 믿고 있는 지 알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또 한 사람에게 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을 용기가 없었다. 재환은 강아지같은 표정으로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상혁을 흘깃거리다 종이와 펜을 요구했다. 김 경위님이 계셨으면 했는데... 펜을 받아들어 종이 위에 글을 쓰는 손이 느렸다.
"이거, 차 경감님이랑 김 경위님 오시면 전해주세요."
재환은 마치 상혁은 보면 안된다는 듯 손 끝에 힘을 주어 접은 종이를 상혁에게 건넸다.
"성함이... 뭐라고 전해드릴까요?"
"그냥 이재환이라고 전해주시면 아실거에요."
"네, 알겠습니다."
재환이 꾸벅 허리를 숙였다. 혹여 상혁이 쪽지를 볼까 걱정스러운지 상혁의 손에 잡혀 유독 작아보이는 종이를 힐끗거린 재환이 몸을 돌려 서를 나섰다. 보지 않겠다는 양 학연의 책상에 쪽지를 내려놓는 시늉을 하던 상혁은 재환의 모습이 문 너머로 사라지자 냉큼 종이를 들었다.
"정답은 이재환씬데, 한번만 컨닝 좀 합시다."
힘주어 접은 쪽지를 펼쳤다. 작은 종이를 쥔 상혁의 손이 하얗게 질리고 손 안에 종이는 버석이는 소리를 내며 구겨졌다.
'12번째 희생자가 생길거에요. 어두운 시간대에, 어두운 골목이에요. 희생자는 독신인 50대 여성.'
이게, 뭐야? 12번째 희생자가 발견되었다, 도 아니고 생길 것이다?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건가? 깨지않아 눈꺼풀을 짓누르던 잠은 삽시간에 사라졌다. 둥글둥글하니 귀여운 글씨체가 전하는 조금은 소름끼치는 내용에 학연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거는 상혁의 손이 다급했다.
"재환씨가 다녀갔다고?"
상혁의 연락에 학연과 원식은 말그래도 감식반을 '들렀다'만 돌아왔다. 상혁이 꼭 손에 쥐고 있어 조금은 눅눅해진 쪽지를 받아든 원식이 내용을 읽고는 학연에게로 쪽지를 넘겼다. 재환이 들렀다 사라진 게 5시 쯤, 그리고 학연과 원식이 돌아온 게 7시. 지금쯤 재환은 제가 일하는 바에서 일을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학연은 쪽지를 훑어보고 주머니에 쑤셔넣으며 몸을 일으켰다.
"김 경위는 한 순경이랑 같이 순찰돌아. 11번째 희생자도 이 근처에서 발견되었었으니 12번째 희생자도 이 근처일거야. 그러니까 이재환씨가 자꾸 이미지를 보는 거일테고. 순찰 돌기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저녁이나 밤에 희생자가 발생할테니, 조금 일찍부터 늦게까지."
"차 경감님은 어디가십니까?"
"이재환씨한테. 칼 감식결과 나온 것도 말해줘야하고. 12번째 희생자나 범인에 대해서도 더 대화해봐야겠어. 이재환씨 퇴근까지 기다렸다가 집에는 내가 바래다줄테니까 김 경위는 순찰이나 돌아."
학연의 말에 원식은 조금 아쉬운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지워내고 상혁의 어깨를 두들겼다. 고갯짓으로 나가자는 신호를 하기에 상혁도 일어나 겉옷을 챙겨입었다. 두 사람이 나서는 것을 바라보며 학연은 재환의 쪽지를 한 번 더 내려다보았다. 12번째 희생자. 어두운 골목. 11번째 희생자가 발견된 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예전처럼 3-4일의 짧은 간격을 두고 살인을 벌이는 것일까. 비닐에 담긴 흉기를 가방에 밀어넣으며 입술을 거세게 깨물었다.
8시가 넘어가서야 학연은 재황이 일하는 바에 도착했다. 하얀 셔츠를 걷어 팔을 드러낸 재환은 쉐이커를 흔들고 있었다. 그 앞에 털썩 주저앉으니 인사를 건네던 재환은 학연임을 알아채고 두 눈을 크게 떴다.
"12번째 희생자. 벌써 발견됐어요? 아닌데. 아직은 시간이 이른데..."
"아닙니다. 지금 김 경위랑 한 순경이 골목 순찰 돌고 있을겁니다. 11번째 희생자도 이 근처였고, 재환씨가 자꾸만 이미지를 보는 것도 그렇고. 범인이 이 근방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는게 맞습니까?"
재환의 눈썹이 조금을 일그러졌다. 그런 것 같다는 양 작게 고개를 주억거린 재환이 칵테일 잔에 체리빛 칵테일을 따라내 한 쪽 끝에 앉은 여자에게 건넸다. 재환의 손, 팔, 얼굴로 차례대로 올라가는 시선을 느끼지 못하는 지 슬몃 웃어주기만 한 재환은 다시 학연의 앞으로 다가왔다.
"퇴근이 몇십니까? 이런데서 할 이야기는 아닌지라."
"아... 2시에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음료라도 한 잔 하실래요?"
"아뇨. 근무 중이라. 기다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재환은 다른 손님을 응대하는 듯 했다. 항상 위축된 모습만 봐왔었는데 작게 웃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손님을 대하는 재환은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다. 재환의 옆얼굴을 구경하다 어둑한 바 내부를 구경하다 가방 안에 든 흉기의 무게에 다시금 마음이 가라앉았다. 고개를 숙여 반질거리는 검은 탁자를 의미없이 바라보는데 학연의 눈 앞으로 옅은 오렌지 빛 음료가 밀어졌다.
"아니, 알콜은..."
"무알콜이에요. 기다리시게 하는 게 죄송해서.. 피치크러쉬라구, 달달해서 무난하게 드실 수 있으실거에요. 조금 이따가 룸 비면 룸으로 안내해드릴게요. 술집처럼 시끄럽지는 않아도 꽤 북적거리죠?"
재환이 콧잔등을 찡긋거렸다. 미안함을 담은 그 행동에 학연은 더 말을 덧붙이지 않고 잔에 입술을 대었다.
"오랜만에 북적거리는 데 온거라, 기분 전환도 되고 괜찮습니다. 나름 농땡치고 좋으니 신경쓰지 마세요."
재환이 조로록 건너편으로 사라지고 학연은 한 숨을 지었다. 괜찮은 사람인데, 끔찍한 사건에 의해 맺어진 관계이니 만큼 재환을 편히 대하지 못하고 있던 자신을 깨달은 탓이었다. 재환이 위축되는 것이 살인사건과 경찰서의 분위기 탓이라 생각했건만 저 때문일 수도 있구나 싶었다. 흉기가 든 가방을 발 밑으로 내려놓았다. 동시에 상체를 무너뜨려 탁자에 뺨을 댔다. 차가운 잔을 따라 흐르는 물을 가만 바라보다 어쩌면 잠시 잠이 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차 경감님."
재환이 학연의 어깨를 흔들었다. 잠이 든 것에 스스로 놀라 몸을 일으키는 학연을 보고 미소지은 재환이 학연을 룸 쪽으로 이끌었다.
"바에 손님이 적어져서 잠시 시간이 될 것 같아요. 룸으로 가요. 하실 말 있으셔서 온 거잖아요?"
고개를 끄덕인 학연은 얼음이 녹아 묽어진 음료를 쭈욱 빨아들였다. 맛 없어졌을텐데... 재환이 울상을 짓기에 손사래를 쳤다. 맛있습니다. 달달하고.
가방을 들어올렸다. 룸에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앉아 탁자 위로 가방을 내려놓았다.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것 같기에 건너편에 앉은 재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흉기를 꺼내려던 학연은 손을 멈칫 멈춰세웠다. 기분이 좋아보이는데, 흉기를 통해 또 쓸데없는 이미지를 보게되는 것은 아닐까. 이전 같았으면 신경쓰지 않고 재환의 떨든 눈믈 짓든 눈 앞에 흉기를 들이댔을 학연이건만 학연은 재환의 얼굴을 살폈다.
"보여주실 것 있는 거잖아요. 괜찮아요."
재환이 먼저 미소를 지었다. 학연이 쥔 가방 끝을 붙잡고는 조금 더 벌려내는 재환에 학연은 천천히 흉기가 든 비닐을 꺼내들었다.
"오늘 감식반에 다녀왔습니다. 11번째 희생자 곁에 있던 칼 감식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요. 그런데 역시나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칼날을 소독되어 있어서 희생자의 피도 살점도 없었고 손잡이부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5년 전과 똑같고 전 이제 곁에 남겨놓는 칼들이 범행에 사용된 흉기가 맞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
재환의 소파 끝으로 몸을 당겨 앉았다. 학연에 의해 탁자에 놓인 흉기에 손을 대지도 못하고 물끄러미 바라만 보다 떨리는 손을 뻗었다. 쥐지도, 들어올리지도 못하고 검지를 겨우 뻗어내 손잡이 부분을 만졌다. 끝이 짧게 깎인 동그란 손톱을 내려다보던 학연은 눈을 들어 재환의 얼굴을 살폈다. 시종일관 짓고 있던 미소를 지워낸 재환은 그 어디도 바라보지 않고 있었다. 저 너머의 어딘가를 바라보다 두 눈을 꾹 감아내렸다.
"이재환씨."
뒤로 넘어갈 듯 상체를 뒤로 물려내는 재환에 학연은 흉기를 가방 속에 쳐박듯이 집어넣었다. 겨우 상체를 지탱하고 앉은 재환이 미약한 미소를 지었다.
"아주, 날카로운 눈을 가졌어요."
"...범인이 말입니까?"
"그 칼이 보여주는 이미지니까. 범인이거나 범인과 아주 가까운 사람이겠죠."
"..."
"칼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일거에요. 살을 찟고 뼈를 부수는 것에는 전문가겠죠. 어디를 찌르고 어디를 그어야 사람이 죽는지, 잘 아는 사람인 것 같아요."
학연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를 표했다. 그러고보니 시신들에 남은 상처는 모두 같았다. 자상은 아주 많았지만 죽일 정도로 깊은 상처는 목에 있는, 동맥을 끊은 것 단 하나 였다. 나머지는 그냥 마구잡이고 찔러댄 상처들 뿐이었다. 처음에는 정신 나간 미친놈이 이리저리 사람을 찔러 죽이는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지금을 달랐다. 범인은 얼굴과 목, 가슴에 상처를 남기며 비명을 지르는 희생자의 반응을 즐기다 희생자가 기진맥진해지면 동맥을 끊어 살해했다. 어디를 찔러야 한번에 죽는지, 어디를 찌르면 죽지 않고 끔찍한 고통만을 느끼는지. 범인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수첩을 꺼내 재환의 말을 받아 적은 학연은 소파에 등을 묻고 앉았다. 가는 것 아니냐는 물음을 표정으로 대신하는 재환에겐 작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일 끝나면 집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기어코 한 시간을 더 기다린 학연은 동료에게 마감을 부탁하며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크로스백을 매는 재환을 바라보았다. 가방에 눌린 후드의 모자를 빼내지 못해 낑낑거리는 재환의 뒤로 다가가 모자를 정리해주곤 바에서 나가는 계단을 앞서 걸어올라갔다. 뒤를 따르는 재환의 발소리가 가볍게 복도를 울렸다.
"그런데 일이 매일 이렇게 늦게 끝납니까?"
"네. 손님들이 대게 퇴근 후에 오셔서..."
"늦은 시간에 위험할 것 같네요."
묘한 기시감에 재환이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따르는 발 소리가 멎은 것을 깨달은 학연이 뒤를 돌았다. 묘하게 웃는 재환을 발견하곤 왜 그러냐는 듯 눈썹을 한번 움직였다.
"김 경위님하고 같은 말을 하시네요?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저도 꽤 체격 좋은 남자구... 익숙해져서 무섭지도 않아요."
크흠- 원식과 같은 말을 했다니 괜히 민망해져서 목을 가다듬었다. 거리가 멀지 않아 걸어서 출, 퇴근을 한다는 재환에 말에 따라 버스정류장으로 앞서려던 발을 돌려 재환과 어깨를 나란히 해 걸었다.
"그런데, 하시던 운동 그만두시고 경찰이 되신거는, 다리 때문인가요?"
한참을 망설이던 재환이 학연의 옆 얼굴을 흘깃 올려다보며 물었다. 곧장 돌아오는 시선에 비지땀을 흘리며 대답하고 싶지 않으시면 안 하셔도 괜찮아요. 멋대로 봐서 죄송해요. 그런데 보고싶지 않아도 보이는 게 간혹가다 있어서...라 허둥거렸다.
"춤, 추는 것을 좋아해서 무용을 전공하려했습니다. 한창 성장기를 겪는 와중에 춤을 너무 많이 췄더니 무릎관절이 다 망가졌다고 하더군요. 춤을 더 이상을 못 출 수도 있다는 말에 겁이 나서 당장 그만뒀습니다. 쉽게도 꿈을 포기한 주제에 꿈이 사라져서 힘들어했습니다. 그러다 경찰이 되겠다고 새로운 꿈을 가진겁니다. 무릎은 가끔 쑤시고 아프지만, 못 달리고 못 걷고, 그러지는 않습니다."
"우와, 춤 잘 추세요? 전 고등학교때 기름칠 안 한 로봇이라고 친구들이 놀렸었는데. 대신 저 노래 꽤 잘 불러요. 들어보실래요?"
재환이 눈에 띄게 화제를 돌렸다. 정말로 목청 높혀 노래를 부를 기세라 학연은 처음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고개와 함께 손을 저으며 골목을 돌았다. 저 진짜 잘 부르는데... 하는 재환의 목소리는 어둠 속에 움직이는 두 인영에 의해 멈춰졌다.
새카만 인영 하나가 학연과 재환을 발견하곤 어지러운 골목 속으로 급하게 사라졌다. 쨍그랑. 하는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또다른 인영은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재환의 가슴 앞으로 팔을 가로질러 재환을 막아서고 있던 학연이 쓰러진 인영을 향해 발을 옮겼다. 비가 오지 않아 바닥이 젖을 리가 없건만 학연의 발 밑으로 철벅이는 소리가 들렸다.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에 달을 가리던 구름이 흘렀다. 흐릿한 달빛이 골목을 비추고 시끄런 파열음을 내며 떨어져내렸던 것이 작은 빛을 모아 튕겨냈다. 피에 젖은 칼. 학연의 가방 안에 있던 그 것과 같은 칼. 멍하니 멈춰 선 학연 너머로 반쯤 가려진 것은 눈을 감지 못한 여자.
순간 밀려드는 영상에 재환의 두 눈이 뒤로 넘어갔다. 시선보다 빨리 넘어가는 몸에 찬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지기 전 학연이 재환의 등을 붙잡아 끌어안았다.
"재환씨!"
몸음 멈췄건만 저 편으로 넘어가는 정신은 멈추지 못했다. 흐릿한 달빛이 흐릿하게 비추는 학연의 얼굴을 바라보며 재환은 정신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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