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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ometry
만지거나, 보거나, 듣고 그것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초능력.
4.
"20대. 180cm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호남형 남자."
수첩에 재환이 했던 범인에 대한 단서를 쓰던 학연이 볼펜 끝을 씹었다. 부족해. 너무나도 부족하다. 조금 더 확실한 단서를 재환이 말해주길 원해 성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머그를 쥔 재환의 손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등을 쓸어내리고 있는 원식을 바라보다 한숨과 함께 다시 프로젝터 화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성급하게 굴어선 안돼. 재환씨를 몰아세워서도 안돼고. 재환씨는 도움을 주는 자일뿐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차학연, 본인이므로.
"저..."
한참을 입을 다물고 있던 재환이 조심스레 학연에게 말을 건넸다.
"네. 재환씨."
"그 사람...결벽증이 있는 것 같아요. 지문이 발견되지 않는 건 흉기를 소독한 후에 버리는 이유도 있지만, 장갑을 끼는 것 같아요. 하얀 면장갑이요."
결벽증. '호남형'이라는 단어 옆에 글을 휘갈겨 쓰며 환한 빛을 발하고 있는 프로젝터를 종료시켰다. 흘깃 돌린 시선 끝으로 3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짧은 시계바늘이 보였다. 탁 소리를 내며 수첩을 접고 식어버린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늦은 시간에 서로 와달라고 부탁해서 죄송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엔 낮에 뵙죠. 김 경위. 재환씨 댁까지 모셔다드려."
"네."
의자를 시끄럽게 끌며 일어선 학연이 덩달아 후다닥 일어나는 재환을 지나쳐 사무실을 나섰다. 초조한 마음이 드러나는 그 표정에 무례를 나무라려던 원식이 멎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해해주세요. 이번 사건, 차 경감님이 경장이던 시절에 처음 발생했던 사건이거든요. 누구보다 범인을 잡고자 하는 의욕이 앞서는 분이시라..."
작은 미소로 답하며 크로스백을 메는 재환을 기다리던 원식이 상혁이 먹고 미쳐 정리하지 못한 곱창볶음 옆, 아무렇게나 놓인 차키를 집어들었다. 정리 안한다며 툴툴대려던 입은 옆에 선 재환을 의식해 얌전히 다물렸다.
"여기서 우회전이에요."
원룸촌에 들어서서 좁은 골목을 경찰차가 돌았다. 흐릿한 가로등이 드문드문 밝힌 골목은 어둠에 잠식되어 고요했다. 꽤나 어둡고 구석진 골목, 재환은 5층짜리 빌라를 가르켰다.
"저기에요. 여기서 내려주시면 돼요.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문을 열고 내리는 재환을 원식이 바쁘게 따라 내렸다. 대충 세운 차가 마음에 걸렸지만, 늦은 새벽이고 잠시니까 뭐...로 위안 삼으며 재환의 뒤를 따랐다.
"어두워서 위험해요. 문 앞까지 배웅해드릴게요. 그래야 내가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어깨를 붙여 옆으로 서며 멍한 눈을 깜빡이는 재환에게 웃어보였다.
"그런데 일이 매일 이렇게 늦게 끝나요?"
"아무래도 바에서 일하다보니... 손님들 대부분이 퇴근 후에 오셔서 새벽까지 한 잔하시는 분들이거든요."
"너무 늦은 시간이라 위험하겠어요."
"아뇨. 저도 남잔데요, 뭐..."
좁은 골목은 천천히 걸으며 재환을 내려다보았다. 어둑한 붉은 빛이 높은 코에 그늘을 만들어냈다. 살짝 내려감긴 두 눈 역시 그림자가 져 묘한 느낌. 원식은 괜히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공중에 떠서 흔들리는 손은 걷는 행위를 할 때 당연스러운 것인데도 괜스레 어색해 엉덩이 주머니에 욱여넣었다. 여전히 크로스백을 꼭 쥔 재환의 손을 보며 빌라 입구에 멈춰섰다.
"감사합니다."
"네. 잘자요. 한번 차 경감님이랑 재환씨 일하는 바에 한 잔하러 갈게요."
술은 둘 다 잘 못하지만. 덧붙여지는 말에 재환이 웃음을 지었다. 동그랗게 말려 올라가는 뺨에 저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려다 손을 살래살래 휘저으며 몸을 돌리는 재환에 다시 주머니로 쑤셔넣었다. 재환의 몸짓에 따라 노란 불빛을 토해내는 조명을 바라보며 층계 너머로 멀어지는 재환의 등을 바라보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뒷걸음질 치며 작은 창 너머로 켜지는 조명을 확인했다. 2층, 3층, 4층, 그리고 마침내 5층. 모든 불빛이 제 할 일을 마치고 꺼지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원식이 등을 돌렸다.
"미쳤나...?"
뺨을 쓸어보고 싶어 주머니 안에서 꿈틀대던 손을 꺼내어 바라보았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의미 없이 반복하다 반대편 손바닥에 찰싹 소리가 나도록 부딫혔다. 부드러워 보였는데... 그런데 재환씨 5층 사는구나. 재환에 대한 정보를 머리 속에 입력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차로 돌아갔다.
아, 근데. 웃는 거 귀엽다. 아까 차 물어볼 때 답 안하다가 핫초코 말하니까 냉큼 핫초코 달라고 답하는 것도 귀여웠는데. 흐흫...아, 진짜 미쳤나?
"경감님. 퇴근 안하십니까?"
취객이 난동을 부린다는 신고에 급하게 나갔던 상혁이 돌아와 먹은 야식을 정리하며 컴퓨터 앞에 앉은 학연에게 물었다. 턱을 괸 채 책상이나 툭툭 두들기던 학연이 상혁의 부름에 정신이 든 듯 고개를 들었다.
"가야지. 김 경위 들어오는 거 보고. 그런데 한 순경. 결벽증이 있으면, 그런 것도 병원에 가나?"
"사람에 따라 다르지 않겠습니까?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다니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방치하겠죠?"
"병원 기록이라도 좀 찾아볼까..."
"혹시 그 범인이 결벽증이 있답니까?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재환의 능력에 대해 상혁이 알게 되어도 좋을까. 일단 재환의 존재는 저와 원식만 아는데. 상혁을 바라보는 학연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과거 저 자신이 보일정도로 높은 사명감과 때 묻지 않은 순수함. 무슨 일이든지 열과 성의를 다하는 상혁. 아끼는 후배이고 상혁의 말처럼 강력반에서 함께하게 될 미래가 기대되는 후배이지만. 아직은 이 일에 상혁을 깊게 관여시키고 싶지 않았다. 끔찍하기만 한 사건이니. 문득 11번째 희생자의 시신을 보고 얼굴을 하얗게 덧칠하던 상혁이 떠올라 고개를 내저었다. 말을 하려는 듯 움찔거리던 입술을 굳게 다문 학연이 몸을 일으켜 세우며 의자에 걸쳐져 있던 자켓을 걸쳤다.
"아니, 뭐. 매번 흉기를 소독해서 버리니까. 혹시나 결벽증일까- 싶은거지. 내 추측이야, 추측."
"경찰의 촉 같은건가요? 와 역시...."
"됐고, 그냥 먼저 갈게. 김 경위 들어오면 알아서 잘 들어가라고 하고. 한 순경도 고생해."
"넵."
말하려다 급히 말을 바꾸는 듯한 학연에 상혁은 미심쩍은 얼굴을 해보였지만 문을 나서는 학연을 배웅했다.
"아까 김 경위님 손님. 분명 뭐가 있는데...이것도 경찰의 촉인데..."
잔뜩 위축된 채로 들어서던 남자. 그런 남자를 감싸던 원식. 늦은 시간이긴 해도 체격 건장한 남자를 집 앞까지 바래다주던 원식. 방 안에서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난 이후 생각에 잠겨 옆에서 몇 번을 불러도 알아채지 못하던 학연. 갑작스레 결벽증에 대한 말을 꺼내던 학연. 모든 답은 그 남자가 가지고 있을 터였다. 이건 진짜 경찰의 촉, 한상혁의 촉이니 믿을 만 했다. 아마도.
"김 경위님 오시면 붙잡고 물어봐야지-"
상혁에 곱창볶음 포장지를 잡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주먹을 쥐었다. 호일이 구겨지는 소리와 함께.
"아...!"
호일 사이에 지저분하게 남아있던 양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아아!!!!"
답지 않은 고음으로 소리를 내지른 상혁이 걸레를 가지러 화장실을 향해 달렸다. 김 경위님이 보시면 낮고 빠른 말로 랩이라도 하듯 잔소리를 읊을 게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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