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Psychometry
만지거나, 보거나, 듣고 그것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초능력.
1.
듣기 싫은 소리를 내는 캐비넷을 열어 젖힌 원식이 노란빛이 조금을 바랜 파일을 꺼내들었다. 아직 원식이 경찰대를 다니던 시절 벌어졌던 끔찍한 연쇄살인. 그 10명의 희생자들에 대한 사건파일이 든 파일이었다.
"그걸 왜 매일 꺼내보고 있어. 뭐 재미있다고."
당시 경장이었던 학연이 그런 원식을 돌아보고 타박했다. 처음으로 패배감을 느껴야만 했던 사건. 학연은 아직도 그 사건을 잊지 못해 틈만 나면 사건파일을 들여다보았지만 원식이 그 파일을 열때면 미간을 찌푸리곤 했다.
"아, 차 경감님. 이 사건 잊지 못하시는 건 저랑 같지 않습니까? 살인사건을 푸는 가장 큰 열쇠인 흉기도 보란 듯이 있는데,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사건이잖습니까.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한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관심을 가지는 건 좋은데, 5년동안 희생자도 안 나와서 잊혀져가는걸, 그 당시엔 학생이었던 김 경위가 왜 들여다보냐고."
학연이 원식의 손에서 파일을 빼앗아갔다. 슬쩍 눈을 굴려 난도질 당한 여인들의 시신을 둘러보고는 탁 소리를 내며 파일을 닫았다. 원식이 유난히 작은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 아랫입술을 부풀렸다. 점심 시간이라 한산한 경찰서. 책상에 아무렇게나 긴 다리를 피고 앉은 원식이 툴툴거렸다.
"사건 파일을 보고 제 나름의 공부 좀 하려고 합니다. 거, 학교 선배이기도 하신 분이 가르침을 주지는 못할 망정 공부를 방해하고, 그러면 되겠습니까?"
"공부를 해도 좀 정상적인 사건으로 공부해."
"살인 사건 중에 정상적인 사건이 어디있습니까?"
"그건 그렇네. 그래도 이건 나중이야."
학연이 파일을 다시 캐비넷에 넣었다. 끼익 소리를 내는 캐비넷을 닫으며 언젠가 기름을 칠하리라 마음 먹었다. 그때 전화벨소리가 적막을 찢었다.
"네. 서울중앙지검 강력반 소속 김원식 경위입니다."
전화를 받은 원식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네. 일단. 네, 알겠습니다. 분주히 무언가를 받아적은 원식이 학연에게로 다가왔다.
"뭐야. 무슨 일인데 그래? 뭐 사건 발생했대?"
원식은 대답없이 쪽지를 내밀었다.
'11번째 희생자 나타날 것. 희생자는 40대의 여성. 이름은 JH.'
"...뭐야 이게..."
"저도 잘 모르겠어요."
통화내용은 녹음이 되었을 터였다. 몸을 일으킨 학연은 원식이 받았던 전화로 다가가 녹음파일을 재생시켰다.
'안녕하세요.. 헌 신문을 정리하다가 5년 전 기사를 봤어요.. 곧 11번째 희생자가 나타날거에요. 40대 여성, 이름은....이름은 JH... 이상하게 들릴 거란 거 알아요. 하지만 정말이에요. 정말...!'
어린 목소리였다. 공포에 짓눌려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 목소리는. 조금은 탁한 감이 섞여있었지만 불분명한 발음으로 씹히는 목소리는 고작해야 이십대 중반으로 들렸다.
"헐. 뭐에요?"
식사를 마친 모양인지 어느 틈에 상혁이 곁으로 다가섰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원식의 옆으로 학연은 가라앉은 표정을 풀 줄을 몰랐다.
"기척 좀 내, 한 순경."
"제 발소리 곰 같다고 하셨으면서 왜 못들으세요? 뭔데요, 뭔데?"
"조용."
투닥이는 원식과 상혁에 학연이 구겨지는 미간을 눌러 폈다. 탁자를 두들기는 어두운 색의 손가락이 잔뜩 날이 서 있었다. 상혁이 들썩이려던 몸을 가라앉히며 학연을 내려다보았다.
"이거, 믿어도 되는 겁니까? 목소리로 봐서는 장난 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일단 목소리가 너무 어려. 그 사건에 대해 뭐 제대로 알 것 같지도 않고. 그냥 그 기사를 보고 너무 놀래서..."
"장난 같지는 않습니다. 진짜로요."
"실종 신고 들어온 40대 여성중에 JH 찾아봐. 혹시 모르니까 주시는 하고 있자."
"네."
혹여 다른 이들이 듣고 혼란이 빗어질까, 학연은 녹음파일을 지웠다. 아직은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으니 괜히 5년 전 사건을 상기시킬 필요는 없었다.
"아, 뭔데요오! 저도 좀 같이 압시다, 예?"
"한 순경, 시끄러워. 넌 그냥 동네 순찰이나 잘 돌면 돼."
"아, 저도 미래 강력반이라니까요? 미래에 함께 사건을 처리할 동료 사이에 이래도 됩니까? 예? 아 김 경위님!!"
시끄러운 두 사람을 뒤로 하고 학연은 캐비넷으로 다가섰다. 조금 전에 넣었던 파일을 다시 꺼내 잔혹한 살해의 현장을 돌아보았다.
"이 정신 나간 살인이 다시 발생할거라고...?"
혹시 기회일지도 몰랐다. 자신에게 패배감을 안겨주었던 그 미친 싸이코패스를 잡아 낼 기회. 물론, 같은 사건이 다시 발생하는 건 사양하겠지만 그 싸이코패스가 제 발로 걸어나와준다면야. 파일을 보며 자리에 앉은 학연이 볼 안쪽 살을 잘근잘근 씹었다.
사흘동안, 학연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 무색할 만큼 어떠한 사건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장난전화였던가. 원식이 적어서 건넸던 쪽지를 구겼다. 다리를 달달 떨며 마우스를 딸깍이는 원식에게 눈초리를 세웠다가 급히 나갈 채비를 하는 상혁에게로 눈을 돌렸다.
"어디가 한 순경?"
"아아, 산에 올레길 있죠? 거기에 뭔가 이상하게 있다고 와달라는 전화가 와서요. 가보려구요."
"그래, 날도 추운데 고생이네."
"미래의 강력반 유망준데 이정도야, 뭐."
상혁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녀올게요- 라 말하며 두터운 외투를 걸치고 모자를 눌러썼다.
학연은 느릿하게 파일을 뒤적였다. 11번째 희생자, JH. 실종 신고가 들어온 40대 여성 중 JH의 이름을 가진 여성은 없었다. 원식은 하품을 쩌억- 하다 간식거리라도 사온다며 서를 나섰다. 원식이 나간 지 오래 지나지 않아 책상에 놓인 원식의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었다. 흘깃 시선을 던졌다가 개인적 연락인 것 같아 대신 받지 않고 무시했다. 그 울림이 끊기기 무섭게 주머니에서 학연의 휴대폰이 울렸다. 까만 화면은 상혁의 이름을 띄우고 있었다.
"응, 한 순경. 왜?"
"경감님."
"왜."
"시신이에요. 얼굴, 목, 가슴에 수십 개의 자상을 입은 여성의 시신. 얼른 와주세요. 빨리."
편히 의자 위에 늘어져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때 마침 손에 붕어빵을 가득 든 원식이 들어서다 딱딱히 굳은 학연을 발견했다.
"누구 전환데 그래요?"
"11번째 희생자."
"네?"
"옷 입어, 김 경위. 일단 현장 나가보고 그때 그 전화, 그 사람 추적하고. 그 사람 만나봐야겠어."
"네."
'Psychometr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 Psychometrer 5 (0) | 2017.12.26 |
|---|---|
| Psychometrer 4 (0) | 2017.12.23 |
| Psychometrer 3 (0) | 2017.12.14 |
| Psychometrer 2 (0) | 2017.12.12 |
| Psychometrer pro. (0) | 2017.12.11 |